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요 8:3-11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순서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예수님의 전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는 다릅니다.

요한복음의 핵심 내용은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요 3:16이다.

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느냐? 십자가의 제물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요한복음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 1-11장까지는 나는 죽으러 왔다. 나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12장부터 예수님이 실제로 죽음을 준비해서 죽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면 나는 죽으러 왔다. 죽을 것이다는 것을 

요 4장에 사마리아 성에서 수가성 여인과 예수님이 대화를 하는데서 나는 죽으러 왔다. 나는 죽을 것이다는 의미를 말한다.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어러 왔다. 그때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 한다. 그러니 여자가 당신은 유대인인데 왜 물을 달라 합니까? 너에게 물을 달라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생수를 구했을 것이고 그가 네게 생수를 줄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서 생수를 얻겠습니까? 하니 내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다.

예수님이 어떻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됩니까? 십자가에 살찢고 돌아가심으로 그 공로를 믿는 것이다. 나는 생수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을 것이다는 것이 요한복음 4장의 내용이다.

6장에 보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열 두 바구니 남았다. 그러면서 길게 말씀하시는데 내가 생명의 떡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명의 떡이 되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는 것이 생명의 떡이 되는 것이다.

7장에 보면 초막절인데 이 절기는 유대인 절기의 마지막 절기이다. 초막절을 지키를 때는 집을 나와서 마당, 들에서 나뭇 가지로 초막을 짓는다. 그 초막 안에서 일주일간 불편한 생활을 한다. 왜 그렇게 하나님이 초막절을 지키라고 했느냐? 그것은 유월절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유월절을 잊어버리지 말아라.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애굽 종 노릇하다가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안 내 보낸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장자가 죽는다. 정월 14일 저녁에 양을 잡아서 문 인방에 피를 바른 집안에서 쓴 나물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러는 가운데 천사가 와서 피가 있는 집은 넘어가고 없는 집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첫번째 것은 다 죽었다.

왜 천사가 피가 있는 집은 넘어갔을까요? 

죽음의 천사가 피가 있는 집은 피가 있으니까 이 집에는 벌써 죽었네. 이 집은 벌써 죽었네 하고 넘어간 것이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셔서 죽을 것이다. 이것이 7장이다. 이집은 이미 죽었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어 주실 것을 의미한다.

나는 죽을 것이다.


8장 묵상하개 되는데 8장에서 예수님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자를 돌로 치라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했는데 6절에 이 여인을 정죄하기 위해서 끌고 온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끌고 왔다 해습니다.

그러니까 에수님이 손 가락으로 엎드려서 글을 바닥에 쓰셨다. 계속 질문을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그리고 두 번째로 다시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니 어른으로부터 젊은 이까지 다 돌을 버리고 갔다 했습니다. 10절에 예수님이 일어나서 여자에게 묻습니다.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그러니 여자가 예,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니 죄를 범치 말라했습니다.

사단은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도록 만들었다. 영적 전쟁에서 사탄이 이긴 것이다. 예수님이 이것을 회복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말씀으로 살 것이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눅 4:13에 마귀가 모든 것을 시험한 후에 일시동안 떠나니라 했습니다.

일시 동안 떠났다가 다시 나타나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데나리온을 가지고 와서 우리가 세금을 바쳐야하겠습니까? 바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모세의 율법을 어겼으면 자기들이 처 죽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를 미끼로 해서 에수님을 정죄하고 심판하려고 끌고 온 것이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마귀와 사탄이 우리를 보이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속 시험하고 있다.

보이는 시험은 각종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파, 추수꾼,  Jms, 여호와의 증인.

사탄은 이단들을 동원해서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합니다. 교회가 인정하지 않는 성경공부 모임에는 가지 말라. 그것은 수상하고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러면 이단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마음을 통해서도 사탄이 역사를 한다. 우리 마음 단속을 잘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비난하고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내가 사탄의 도구가 됩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간음으로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와서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

오늘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면 그 순간 우리가 사탄의 도구가 된다. 

100세를 산다 하더라도 백세 사는 동안에 우리가 남을 축복하고 칭찬해도 모자랄 판에 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숭보고 해야 합니까?

이웃간이나 교회에서 목양 할 성도 간에든지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그런 말을 하지 맙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정죄하는 자들을 정죄하지 않고 축복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니까 

첫번째 주는 교훈.

무릇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고 

살전 5:22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 사람은 이래서 좋다 저래서 좋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축복하는 삶으로 남은 삶이 점점 풍성해 지기를 원합니다.


두번째 주는 교훈은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용서 받은 죄인이냐? 용서 받지 못한 죄인이냐의 차이는 있다.

끌고 온 사람이나 끌려 온 사람은 같은 죄인인데 끌려 온 사람은 죄를 용서 받았으나 끌고 온 사람은 죄를 용서 받지 못했다.

우리는 끌려 온 죄인처럼 드러난 죄는 없을지 모르나 드러나지 않는 죄들이 많다. 내가 아는 죄도 있지만 모르는 죄가 더 많다. 우리가 아는 죄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죄가 더 많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 이것도 죄였구나 놀랄 일이 더 많은 겁니다.

그런데 왜 끌고 온 사람들이 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정죄 심판하고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하느냐? 그것은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다. 자기들의 죄는 드러나지 않았고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드러났으니까 자기들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비교하는 삶을 살면 안 된다. 우리 나라의 교과서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있다. 거북이가 이겼다는 내용이 있다. 

왜 거북이가 이기고 토끼가 졌을까요? 도저히 거북이 이길 수 없는 경주인데 거북이가 이기고 토끼가 졌다. 토끼는 거북이와 비교를 했다. 그래서 한 숨 자고 가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북이는 토끼와 비교를 안 한 것이라. 산 정상 골인지점을 바라보고 꾸준히 가는 것이라. 

그래서 토끼는 비교해서 졌고, 거북이는 정상을 바라봤기에 이겼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장에 서 있다. 영적으로만 아니고 육적으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 가령 경제적으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많이 가졌다. 지식적으로 많이 가졌다 잘 생겼다. 부러워하지 말라. 부러워하는 것은 비교하는 것이다. 적다고 자격지심을 가지지 말라. 많이 가졌던 가지지 못했던 우리의 목적지는 하늘나라이다. 더 가진 자로 하늘 나라에 가면 뒤선 자가 될 수 있고, 좀 적게 가진 자도 하늘 나라에 가면 앞선 자가 될 수도 있다. 항상 비교하지 말고 목표를 하늘 나라에 두고 믿음의 경주를 잘 하여서 그 나라에서 앞 선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세번째로,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돌로 치라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고 두 번이나 손가락으로 땅에 썼다는 말씀…

우선은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을 때 무슨 말씀을 쓰셨을까? 신구약 66권 성경은 99.999%는 사람이나 성령의 감화로 기록했다. 그런데 0.0001%는 하나님이 직접 쓰신 내용이 성경이 있다.

한 달 동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약성경에는 4 복음서가 있다. 구약 성경에도 복음서라고 할 만한 성경이 있습니다. 직접 쓰신 것이 10계명이다. 하나님이 일차로 직접 돌비를 만들어서 그 돌비에다 손으로 써 주셨다. 바꾸어서 말하면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돌비에다가 10계명을 써 주셨다.

그런데 첫번째 받은 10계명을 다 깨뜨렸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돌비에 십계명을 써 주셨다. 

세번째로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쓰신 성경이 다니엘 5장이다.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네번째로 하나님이 어디에 쓰셨을까요? 예수님이 땅에 손가락으로 쓰신 것이다.

다섯번째로 쓰신 것이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써 주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땅에다 손가락으로 쓰셨는데 성경에 기록이 없으니 그 내용을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십계명을 써 주셨을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너희는 이런 죄가 없느냐? 죄 없거든 돌로 치라.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십계명이 아니라도 예수님이 친히 땅 바닥에 손에 쓰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니 사람들이 다 돌아갔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돌아갔다. 

세번째 생각할 것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다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저희가 마음에 찔려, 왜 마음에 찔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렸다. 우리가 어찌할꼬 하니 회개하고 죄 사함 받으라 했다.

행 7:54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린 사람들은 이를 갈면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으니 용서를 받지 못했다.

사도행전 2장에 마음에 찔린 사람은 용서를 받았다.

마음에 찔림이 있거든 가책이 되면 절대로 반발하지 말고, 배척하지 말고 그냥 고치면 된다. 고치면 복을 받습니다. 

마음에 찔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고치고 돌이켜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뤄 가는 것입니다. 


네번째,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다시는 죄를 범지 말라. 이 말의 의미는 너는 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또 죄를 묵인하는 것도 아니다. 너는 분명히 죄인이다. 그렇지만 내가 네 죄를 사해 준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는 죄가 없다. 묵인한다는 뜻이 아니고 죄인인데 내가 너의 죄를 사하여 준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 값은 지지 않고는 죄가 용서 되지 않는다.

8장의 교훈도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기 위해서 네 죄를 사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10계명을 소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세 번 주셨다. 첫번째 출애굽기 20장, 두 번째는 손가락으로 직접써서 줬다. 모세가 깨뜨렸다. 세번째로 모세가 돌판을 가지고 가니 직접 써 주셨다. 그것이 언약궤 안에 보관해 주신 말씀이다. 

모세가 왜 첫번째 받은 돌판을 깨뜨려 버렸습니까? 만일 깨뜰리지 않고 그 돌판에 있는 십계명을 선포하면 다 죄인이 된다. 송아지를 만드는 아론과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죄인 안 만들려고 깨뜨려서 박살 냈다. 

출애굽기 32장에 

하나님 앞에 목숨 걸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애굽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죽이면 하나님이 죽이려고 끌어낸 것 아닙니까? 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다.

베드로전서에 보면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한다.

여자를 보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한 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내 몸을 살찟고 피흘려 너희 죄를 사해 줬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한편으로는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예수님의 피에 팔린 종이다. 그러니까 이 십자가에 보혈은 양면성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에 팔린 종이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죄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죄요. 하지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죄다. 

남은 삶은 죄를 범하는 삶이 아니라 주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는 예수님의 피공로에 팔린 종이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되도다.

살 같이 빠른 광음을

온 몸과 맘을 바치고 ..

힘써서 일하세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섰을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칭찬 받는 것이 우리의 성공이다.

기쁨은 잘하였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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